반심각주의자 2021. 10. 30. 10:12

티스토리를 열였을 때 한 참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기와 노트로는 충족되지 않은 것을 발산하고 싶었다. 그때쯤 이직을 고민하고, 뭐 해먹고 사나 걱정도 됐기 때문에 쓰기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블로그 이외에도 컴퓨터와 노트 여기저기 낙서들이 발견된다. 2017년 드디어 백수가 되었을 때, 몇 번 블로그에 글을 썼던 기억 그대로 흔적이 남아있는 게 보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2018년부터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짧지만 미친 듯이 일하고 휴일도 주말도 제대로 챙겨본 기억 없이 살다 보니 블로그는커녕 건강도 안 좋아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자발적 백수가 되기로 했다. 망가진 건강도 걱정이고 뭘 해 먹고 사나 고민됐는데, 나는 아주 억세게 운이 좋은 녀석이다. 주식이 내 잔고를 늘려줬다. 더도 덜도 아니고, 내 인생의 다음을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할 수 있을 만한 딱 그 정도.

 

꼭 잘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생각해봤다. 내 특기는 "맨땅에 헤딩"이다. 쉽게 싫증을 내고, 진득하니 한 우물 파는 것을 못하는 나는 매번 새로운 일을 했다. 그게 적성에 맞기도 했고, 그럭저럭 잘 해냈다. 바로 전 직장에서도 10년 만에 다시 개발자로 취직해서 전혀 해보지 않았던 종류의 맨땅의 헤딩을 했고, 성과도 좋았다. 내가 가장 꾸준히 한 것은 같은 회사에서 매번 다른 일을 하면 10년 정도 보낸 것. 그러고 보니 회사생활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난 합창부였고, 미술부였으며, 과학반이었고 컴퓨터를 개인적으로 좋아했으며 전자오락과 농구가 취미였다. 백일장과 사생대회에서 상도 받은 적이 있고, 아주 잠깐 미대에 갈까 고민한 적이 있지만, 미술을 새로 배우기엔 늦은 나이였다. 자연과학을 전공했고, 프로그래머 생활로 돈도 벌어 봤으니,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해보면 어떨까? 잘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좋아는 했다. 친구들이 들으면 미친 거 아닌냐고 할 거다.

 

먹물 기질의 특성상 책을 사고 최근 정보의 바다 유튜브를 찾아봤다. 짐작과 비슷한 것도 있고, 새로 알게 되는 것도 있어 즐겁다. 배우는 입장에서 읽고, 쓰고, 그리는 걸 잘할 수 있는 길은 계속 읽고, 쓰고 그리는 방법밖에 없으니 티스토리를 쓰는 연습장 삼기로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보면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도 있도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인생의 행복은 목적을 잊지 않고, 그 과정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그 자체에 있다. 벌어놓은 돈을 다 까먹고 나면 결과가 어떨까? 근사한 미래만 펼쳐질 거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실패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뭔가를 '의도적'으로 배운다는 것은 기쁨이다. 활력도 생기고 목표도 생긴다. 충분히 행복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