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거 끄적끄적

독서생각 1

반심각주의자 2017. 2. 5. 18:42

특별히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활자중독도 아니었고 책을 읽느라고 끼니를 거른 기억도 없다. 내게 필요한 기술서적, 자기계발 책, 약간의 소설을 읽는다. 나에게 책은 정보 습득수단이자 재밌는 이야기를 얻는 수단이다. 그런면에서 나에게 책과 TV는 차이가 많지 않다. 다큐멘터리, 뉴스, 몇몇의 드라마를 TV로 보는 것이 책읽는 행위와 유사하다. 유희가 목적인 여가생활을 취미라고 정의하면 책읽기와 TV 시청은 취미도 되고 정보를 얻기도 하기 때문에 공부도 된다.


물론 독서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장점이 많다. 정보습득의 행위 중에서 독서가 가장 비용이 적고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단편소설 정도면 2시간 영화를 만들고도 내용을 다 못담는 경우도 허다하다. 책 한권의 내용을 12편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경우도 봤다. 책은 텍스트와 함께 독자와 작가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와 정보코드를 전제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이 있는거다. 책이외의 미디어는 같은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추가로 맥락(context)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 비용 뿐만 아니라 시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책에도 맥락을 설명하지만 비용이 저렴하다.


어릴 때는 책읽기가 한 가지의 놀이였다. 한 두권씩 책을 사는 것은 쉽게 허락받았지만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100권으로 된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사주지 않아서 가지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집에 놀러 가서 친구형의 책상 아래서 책을 읽으며 장난 치던 추억이 있다. 한자가 많아 거의 의미를 몰랐지만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세로로 된 소설을 읽으려고 애쓰던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 책을 읽는게 공부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영어와 수학보다 국어와 역사 같은 한글로 텍스트를 읽는 과목의 성적이 좀더 나았다.


학생 때는 만화, 소설, 가벼운 에세이도 많이 읽었다. 실존철학에 관련된 책들, 샤르트르, 까뮈의 소설도 멋으로 읽은 기억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동·서양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도 마음속에 조금 있었다. <국가>이나 <순수이성비판>을 시도해보지만 번번히 책을 다시 덮었다. 반면에 자연과학 전공자라서 과학사나 교양과학책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수학없이 이해하기가 편할 정도였다. 시험기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태백산맥>이 읽고 싶어져서 새벽에 시험공부 중에 붙들고 읽다가 아침에 시험을 본 특이한 기억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틈틈이 기술서적이나 자기계발 서적은 읽어왔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사놓고는 생각과는 다른 책이어서 중간까지만 읽거나 바쁜일이 생겨서 구입한 책을 못읽은 경우도 많다. 역시 문·사·철 인문서적은 추천하는 사람은 많으나 주변에 읽은 사람은 없는 책인 것은 변함없다. 그래도 주변의 사람들에 비해서 책에 투자하는 돈은 적지 않았다. 책읽는 것을 기피하는 취향이 아니었다. 실용적인 책읽기는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책욕심이 약간 있었다. 여러사람이 추천하는 관심분야의 책이나 신간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을 항상 샀던 것 같다. 회사의 복지수당은 거의 책을 사는데만 썼을 정도다. 항상 거처를 옮길 때 책은 골칫덩어리가 됐다. 버리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계속 가지고 다니기도 힘든 존재라서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몇 번씩 읽는 책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이사 때 책을 많이 정리하고 책장 하나 분량의 책만 유지하기로 했다. 그후 한동안은 구입하기 힘든 경우와 몇 번씩 읽을 판단이 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전자책만 산다.


최근에 꽤 책을 평소보다 많이 읽었다. 새로 준비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정보와 여전에 알고 있지만 확인해야할 것들을 찾기 위해서다. 라이프스타일을 많이 바꾸어서 도서관을 많이 이용한다. 다행히 주변에 시립도서관이 있다. 필요한 책을 많이 찾을 수 있고 없더라도 대부분 다른 시립도서관에 요청하면 하루만에 상호대차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기술서적을 많이 찾을 수 없다는 것인데 기술서적을 구입하는게 더 나은 경우가 많아서 구입한다.


평범한 생활독서인 이지만 집중적으로 책을 읽으니 나름 독서관이 생겼다. 우선 읽는 양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이 전에는 일주일에 읽어야할 분량을 정하거나 책한권을 언제까지 읽어야겠다는 식으로 목표를 정해서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많이 읽은 것이 내 삶이나 지혜에 그대로 와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부분은 평소의 생각과 얼마큼 조화가 있느냐에 따라서 영향도 주고 지식도 된다. 일년에 몇 백 권을 읽고, 몇 천 권을 읽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책들도 보이는데 모든 사람에 해당되는 것 같지 않다.


책을 고를 때는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야 한다. 너무 쉬워도 쉽게 지루해지고 너무 어려우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가장 좋은 템포는 몇 페이지가 되던지 한뭉치의 생각을 읽고 되새겨서 내생각과 어떻게 유사하고 다른지를 돌이켜볼 수 있는 책이 제일 좋은 것 같다. 그래서 한문장을 곱씹어서 읽어야 하는 책은 진이 빠져서 읽기가 힘들다. 물론 그런 종류의 책을 읽는게 내 일이라면 감수하겠지만 그렇게 뇌에 고통을 주는게 모든 사람에게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반면에 지루하지 않은 책도 쉬운책만을 고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 않은 정도를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가능하면 한분야의 여러책을 읽어보는게 좋다.


책을 읽은 후에 글을 써보는 것은 책내용을 한번 더 되새길 수 있어서 좋은 습관이다. 가능하면 생각이나 기억나는 문구를 곧바로 혹은 하루안에 적으려고 노력한다. 메모는 습관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좋은 습관을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노려한다. 또 생각은 휘발성이 강해서 기록해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인상깊은 책 중에서 반드시 여러번 읽어야겠다고 생각되면 책을 사서 꼼꼼히 좋은 곳을 표시한다. 도서관에서 빌린책에 낙서가 되어 있을 때 기분이 좋지 않다. 좋은 책은 메모도 하고 줄도 치고 싶지만 빌린책에 그럴 수 없어 읽은 책도 구입한다.


독서와 사색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기본이다. 여기에 토론이 붙으면 금상첨화지만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또 책읽는 것 자체만 목적이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주제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만나기는 더 어렵다. 다만 여러 분야를 같이 얘기할 수 있는 벗이 있다면 최고가 아닐까 싣다.